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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우 - 원장현류 대금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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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격
14,900
제작사
조은뮤직
원산지
라이센스
모델명
JEC0341
출시일
2020-01-08
바코드
8809051666027
아티스트
안성우
미디어
1CD
      총 상품 금액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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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상세정보

      01 짧은 산조

      02 긴 산조 진양

      03 중모리

      04 중중모리

      05 자진모리

      06 대금 시나위




      원장현류 대금산조

      대금산조의 창시자는 박종기(朴鍾基), 강백천 (姜白川)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기는 소리더늠 즉 판소리 가락을 엮어 대금산조를 만들었고, 강백천은 시나위더늠 즉 스스로 남도민요에서 터득한 시나위풍의 새로운 가락을 중심으로 대금산조를 엮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1930년대 이후 전수받은 인물에 따라 여러 유파로 세분되어 전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조선성악연구소에서 함께 활동한 박종기의 대금소리를 계속들었던 한일섭(韓一燮)은 박종기의 후계자로 대금산조의 유파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한주환(韓周煥)과 오랜 세월 교류하며 한주환류 대금산조 생성에 영향을 미첬다.
      아쟁, 태평소, 고법, 창극 작창 등 못 하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했고, 특히 아쟁산조를 창안했던 한일섭은 판소리더늠과 무속 시나위에서 파생된 대금산조가 완성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어릴 때 신달용(辛達龍)에게 대금을 배우다 강백천에게 시나위 더늠을 전수받은 김동진(金東鎭)은 후에 한일섭에게 배운 판소리 더늠을 구음으로 받아 대금 가락에 접목시켜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형성했다. 1951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난 원장현(元長賢)은 16세때 부친 원광준(元光俊) 문하로 대금에 입문했다. 원광준은 선친인 원상록(元相綠)으로부터 1931년부터 1945년까지 대금을 전수받았는데, 원상록은 19세기 가야금 명인이자 대금과 피리연주에도 능했던 한숙구(韓淑求)에게 사사한 연주자로 담양을 중심으로 전남 지역 가까운 지방의 국악인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한숙구의 아들인 한수동과 함께 교류하며 향제 풍류나 남도 삼현, 시나위 등을 주로 연주했다. 
      원상록은 남도지방에서 세습적으로 음악을 해왔던 것처럼 남도지방 전통음악을 충실히 전수 받으며 주로 남도 근교 지역인 전남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원장현은 1966년부터 1년간 김용기에게 대금의 기초를 배운 후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오진석(吳晉錫)으로부터 향제풍류, 삼현, 시나위를 전수받으며, 산조를 연주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고, 숙부인 원광홍(元光弘)에게 민속악에 대한 체계적인 수업을 받았다.
      1968년 서울로 올라온 원장현은 1년간 김동진에게 짧은 산조를 전수받았고, 이듬 해인 1969년 한일섭을 만나 본격적인 산조 수업을 시작하여 1973년 타계할 때까지 5년간 공부를 계속했다.
      원장현류 대금산조는 한일섭이 말년에 구음으로 전수한 가락과 한일섭의 풍부한 음악적 영감에 한숙구, 원상록, 원광준으로 전수된 원장현의 체계적이고 폭넓은 음악적 공력이 더해져 원장현류 대금산조가 형성됐다.
      원장현의 대금산조가 직접적으로 전수된 계보는 한숙구(1대)에서 원상록(2대)으로 그리고 원광준(3대)에서 원장현(4대)으로 전수되어 대금산조가 형성되었고, 간접적으로 전수된 계보는 성원목(1대)에서 한일섭(2대)을 거쳐 원장현(3대)으로 그리고 강백전(1대)에서 김동진(2대)으로 이어져 원장현(3대)으로 전수되는 전수 계보가 원장현류 대금산조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성우의 대금 ‘선비의 대금소리’

      ‘격조있는 호소’
      안성우는 1962년 경기도 파주의 평범한 농촌에서 출생했다. 어느 농촌이던 풍물패가 있어서 봄, 가을로 동네 풍물을 듣고 보며 자라면서 국악에 대한 흥미는 가지고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국악을 공부한 것은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1학년에 입학한 안성우는 선배들이 불고 있는 대금소리에 매료되어 대금을 잡게 된 후 그의 천부적인 “끼”와 끈기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선배들을 제치고 교내 콩쿨에서 수상은 물론 79년에는 육영재단에서 주최한 전국고등학교 음악경연대회 국악부분에서 최우수상, 같은 해 KBS에서 주최한 전국학생국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벌써 그의 대금은 앞날이 예고되어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안성우는 국악계의 젊은 스타였다. 그는 우리나라 대금연주자로서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인물이다. 당시 그에게는 ‘2등’이란 있을 수 없었다.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전국국악경연대회’,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동아국악콩쿨’ 그리고 KBS와 삼성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서울국악대경연’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다. 특히 동아국악콩쿨은 첫 번째 대회에서 그가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기쁨은 물론 이 대회의 성격과 권위와 관련해서 바람직한 방향제시였는지 모른다. 안성우의 대금을 ‘격조있는 호소’라고 평하고 싶다. 정악, 산조, 창작음악, 퓨전국악 가릴 것없이, 그가 어떤 음악을 해도 거기에는 격조있는 호소력이 느껴진다. 격조만을 찾다보면 음악이 딱딱하기 쉽다. 호소를 강조하다 보면 감정에만 치우쳐서 자칫 음악의 격이 떨어지기 쉽다. 그의 음악은 어느 한쪽의 치우침이 없이, 이 둘을 잘 통합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안성우는 선비의 고고한 정신과 예술인의 집념과 끈기를 실천하는 중견연주가로서 그의 겸손하고 온후하며 진실된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대금 소리야말로 예와 악의 일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무대에 앉아 두팔로 감싸 안은 대금은 포근하기가 엄마의 가슴 같아서 좋고 금방이라도 할머니의 옛날얘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대금의 낮은 소리는 친숙하고 따뜻하며 폭포소리처럼 우렁찬 높은 소리는 소리에 대한 경외감마저 갖게 한다. 그가 그런 소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대금에 인생을 걸고 불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습에 절차탁마한 필연이라고 하겠다.
      안성우 대금의 특징은 한 마디로 난세자음을 다스리는 겸양지덕의 소리에 있다. 자만에 빠져 우쭐대지도 않으며 조급하지만 뛰지 않는 그의 성격에서 묻어나는 대금의 평화스런 소리는 듣는 이에게 삶의 의욕과 기쁨을 준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국립국악원과 KBS국악관현악에서 연주원 생활을 하였고 지금은 한양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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